아버지 정약용의 인생 강의, 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다산 정약용 지음/ 오세진 편역/ 홍익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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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항에서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뉴욕에 책 한 권을 가져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싶던 차에 발견한 책, '아버지 정약용의 인생 강의, 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긴 비행을 하는 동안 아버지가 외국에서 인생의 긴 여정을 할 딸을 위해 적어 주신 편지를 읽는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첫 장을 읽어 내려갔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남인으로서,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자 세력을 잡은 노론 벽파들이 서학을 탄압하였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정약용은 한순간에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집안이 폐족이 되고 유배를 떠나게 된다. 자식들을 두고 홀로 유배를 떠나게 된 정약용은 벼슬길이 막혀버린 자식들이 모든 희망을 버리고 엇나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편지를 써 보냄으로써 든든한 길잡이가 돼주었고, 글을 계속 씀으로써 스스로의 몸과 정신을 단련시키며 희망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다산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막막한 현실과 사헌에 보고된 내용으로 후대에 자신의 인생이 평가될 것을 두려워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할 해법이 있다고 굳게 믿었고 자신이 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인 저술에 몰두하였다. 주변 현실에 반응하지 않으며 스스로 주도권을 잡고 의도적으로 자신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걸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더 나은 인격체가 되고 가문을 일으키고 명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공부가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부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고아(高雅)한 일이지만, 아무나 그 참맛을 아는 것은 아니다... 커서는 온갖 어려움을 겪은 너희들 같은 사람만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법이다. - 두 아들에게 부치다
하지만 다산은 책을 읽는 것만이 독서가 아니고, 폭넓은 경험을 하고 문제를 마주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설 때 독서를 하면 그 뜻이 더욱 깊이 느껴지며 안목이 넓어진다고 했다. 특히 가문의 분위기와 지인들의 지도편달을 귀담아 들어오고 소위 지덕체를 갖춘 자제가 힘든 일을 겪게 되었을 때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탁상공론이 만연하던 그 시대 때에 직접 몸을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과연 당대 최고의 실학자 다운 면모를 보인다.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세워야 한다. 배움에 뜻을 두지 않았다면 진정한 독서를 할 수가 없다... 근본이란 무엇인가? 효도와 공경이다. 먼저 효도하고 공경하는 일을 힘써 실천한 후에 근본이 세워진다면 배움은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다... - 두 아들에게 부치다
기본적인 가정 윤리, 사람된 도리를 할 때 겸허한 자세로 배우고 온전히 받아 드릴 수 있는 아량을 갖게 된다는 말을 한다. 현재에도 지식은 많이 쌓아 실리를 따지는 데에 능한 사람들은 정말 많지만 어진 마음이 부족해 자신의 가치를 깎아 먹고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때를 막론하고 나오는 이런 과오들을 경계하며 자식들이 현명하게 크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다.
다산은 당시 젊은이들의 공부 태도에 대해서 꾸짖었는데 공자의 말씀을 인용해 서재의 이름을 *'사물 잠'으로 지을 정도로 흐트러진 자세를 삼가라고 한다.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라.
드러눕거나 삐딱하게 서 있거나 헛소리를 하거나 시선을 함부로 두면서 공경한 마음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모와 움직임, 말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 가지가 학문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급박하며 망령되며 게으른 행동을 멀리하고 상스러움을 멀리하며 믿음직스러운 말을 한다는 뜻을 담는 것이다....
- 두 아들에게 부치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날의 젊은이들은 속박과 규제에 몸서리를 치는 듯하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이들은 예의를 모르고 경거망동을 한다며 세상에 푸념했으니 말이다. 그동안에 나 스스로도 공부를 함에 있어서 용모와 자세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몸이 편한 대로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배움에 뜻을 가지고 공부에 진지하게 임하는 순간 몸이 풀어지는 일이 저절로 경계하게 되었다. 공부하는 것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가벼운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산은 경제 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도 편지에 담았다.
집안의 남녀노소가 모두 놀고먹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한순간도 한가함이 없는 것을 '근'이라고 한다... 한벌의 옷을 만들 때는 그 옷을 얼마나 오래 입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세상의 의복, 음식, 재물은 모두 허상이자 헛된 것이다. 옷은 입다 보면 해어지게 마련이고 음식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재물은 자손에게 불려주면 결국 탕진되어 흩어지고 만다... 물질을 물질적으로 향유하면 소멸하는 데 기한이 있기 마련이지만 물질을 정신적으로 향유하면 변화와 소멸을 피해 간다.
조선시대에 살았던 다산이 전하는 이 글은 많은 것이 변한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새겨들어야 할 진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건과 옷에 집착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며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검소한 삶을 사는 방법인 동시에 생산적인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현시대의 지나친 '풍요'는 욕심만으로 필요 이상으로 옷을 소유하게 하고, 생산되었지만 쓰이지 않아 쓰레기로 소각되는 수 억 벌의 옷들은 환경오염을 일으킬 뿐 만 아니라 물건의 소중하고 귀함 마저 앗아가 버린다. 또한 음식이 넘쳐나 이 지구 상에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 하니 풍요로움은 오히려 우리를 소멸시킨다.
네가 양계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닭을 기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그 일에도 고상하고 상스러움, 깨끗하고 탁함의 구분이 있다... 내가 밤낮으로 생각해보니 생계를 유지하는 묘안으로 뽕나무 심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올해는 오디가 잘 익었으니 그 점을 간과하지 말거라.
... 세속적인 일에서도 늘 말고 깨끗함이라는 가치를 지녀야 하느니라. 늘 이 점을 본보기로 삼거라
- 두 아들에게 부치다
다산의 <목민심서>에서 애민정신을 느낄 수 있듯 그는 아들이 양계(닭을 기르는 일)를 시작하였다고 하자 적극 지지였고 오디를 재배하는 것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일을 창의적으로 접근하여 깊이 탐구하는 자세를 갖으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눈 앞에 놓인 작은 이익을 좇는 것을 삼가고, 모든 일에 진정으로 몰두하여 그 속에서의 즐거움을 찾고 널리 이롭게 하는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당부를 하였는데 특히나 이 점이 내가 일을 함에 있어서 마음에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관심사든 아니든, 해야 할 일에 몰두하며 즐거움을 찾을 때, 비로소 소중한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쓰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올랐을 때는 빨리 산언덕에 샛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處事)의 복색을 잃지 않아야 하고, 만약 벼슬길이 막히게 되면 빨리 서울에 가까이 살면서 앞서가는 문화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
늘 마음을 편안하고 차분하게 먹고 당로지인(當路之人)과 다름없이 행동해라.... 하늘의 이치는 순환하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으면 반드시 일어나는 법이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를 가버리면 결국 천한 백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재능과 덕을 두루 갖춘 은거하는 선비.
-두 아들에게 보여준 가훈
폴란드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마라.'
다산은 먹고사는 일 이외에도 배우는 사람으로서 지속적으로 예술적인 안목을 길러야 앞으로도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당부했다. 정치 문화 예술 심지어 작은 노동 조차도 서로가 분리되어 일어나지 않고 적절하게 결합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편협한 사고를 지양하였던 것이다. 모든 일에 창의성이 필요하고 그것은 다양한 의견과 경험을 접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다시 유념할 수 있었던 글귀다.
동시에 눈 앞에 장애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연하고 늠름하게 주변을 포용하는 태도가 결국 하늘이 나를 돕게 하는 법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에 유배 기간 동안 귀한 저서를 많이 남길 수 있었다. 그의 바람대로 그의 깊은 지혜가 담긴 글들이 온전하게 후세에 전달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선조의 지혜를 지금도 익힐 수 있다.
그러니 우리도 천천히 넘어가면 될 것이다. 나도,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도 스스로를 격려하며.
대대로 내려오는 벼슬 집안의 양반으로서, 지성인으로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세상과 단절되어야 했던 그는 주변 현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였다. 오히려 책에 읽다 보면 다산이 유배지에서 썼다는 배경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그의 글에는 차분함과 큰 아량이 느껴진다. 또한 조선시대 실학자로서 실리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당대 문화적 특성 받아들이는, 삶을 유연하고 슬기롭게 살아갔던 다산 정약용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오죽하면 자신이 죽거든 제사상을 차리기보다는 자신의 책을 한번 더 읽어달라는 조언을 했을까.
여기에 인용된 글 이 외에도 술을 제대로 마시는 법, 좋은 친구를 사귀는 법, 일가친척의 화목을 유지하는 법 등 작은 행실부터 지도자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하는 큰 사회적 책임감까지, 많은 것을 아우르는 잠언이 이 책에 담겨있다.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잘못은 따끔하게 지적하여 바른길로 인도하는 어진 아버지의 글이 담겨 있으니 정말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 줄 추천
인생을 살면서 통찰력과 현명함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군가의 깊이 있는 조언이 필요하다면 꼭 읽어보길... 두고두고 펼쳐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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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을 위해 붓을 들었다“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젊은이들의 질문에 다산이 답하다!다산 정약용이 유배길을 떠나던 1801년, 그의 큰아들 학연은 19세였고 둘째 아들 학유는 16세였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아버지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가르칠 것이 많았다. 다산은 천리 밖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썼고, 그 안에 자신의 삶을 담았다. 하루아침에 폐족이 된 아들들에게 정약용은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그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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